옥당고을
조선의 성종시대는 문화의 황금기라고 불렸을 만큼 세정과 세조가 이룩해 놓은 치적을 바탕으로 빛나는 문화정책을 펴나간 시기였다. 1474년에는 [경국대전]을 완성해 반포했으며, 1492년에는 경국대전을 보충한 [대전속록]과 [동국여지승람], [동국통감], [악학궤범] 등 다양한 서적들을 편찬/간행했다. 세조 때 폐지된 집현전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홍문관을 설치하는 한편, 문신 중에서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인물을 골라 집에서 독서하게 하는 호당제도를 실시하는 등 문화발전에 이바지했다.
이 무렵부터 홍문관의 별칭인 옥당(玉堂)을 상징하는 "옥당고을"의 칭호를 전라도 영광과 황해도 안악에서 사용해오고 있다. (영광을 남악,황해도 안악을 북악) 그 연유는 고려때 부용창(芙容倉)이 있었고 조선조에는 28여 고을의 세곡을 관할한 법성창 등, 지금이 법성항을 거쳐 중국과 국교가 있어 국내외 사신들의 왕래가 비번하였으므로 일찍이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져 무역항으로 발달하여 "예악문물"이 찬연한 고을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도 국내외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의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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